The passage
권태에 대하여
한닙
2010. 10. 28. 23:41
뻐꾸기시계 안에는 고무 벌레의 권태로운 과대 망상이 있고,
구부러진 연통에는 검은 무릎이 있다.
바닥에 낡은 탁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해가 움직이면 그림자는 새로운 모양을 입는다.
양동이 안의 물거울과 부어오른 내 다리 안에 고인 물이 권태롭다.
너덜너덜해진 셔츠 이음새와 빌린 바늘도 권태롭고 바느질하는 떨리는 손길도 권태롭다.
끊어진 실도 권태롭다.
열정없이 카드놀이를 할 때, 남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우울의 권태가 있다.
여자들에게는 노래의 권태가 있다.
뿔과 합성수지로 많든 딱딱한 참빗의 권태 속에서 이를 잡을 때 부르는 향수 어린 노래들.
빗살이 빠져 쓸모없는 양철빗의 권태도 있다.
삭발의 권태도 있고, 도자기함 같은 해골의 권태도 있다.
경비원 카티의 말없는 권태도 있다.
경비원 카티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 카티, 노래 못해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말한다.
- 머리 빗었어, 봐. 머리카락 없으면 빗이 얼마나 따가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