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

도봉산 詩碑 앞에서 그 남자을 추모하며

한닙 2006. 6. 17. 00:05





 
                                     

                                                

                     

         꽃잎 1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 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같고
     먼저 떨어져 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같고

 




도봉산으로 하산하려면 꼭 김수영 시비 앞에 앉아

커피 한 잔하며 숨고르기를 해 본다.

김수영 그 앞에 내가 앉으면

가래가 뱉어지고,

불순물이 뱉어지고,

내 내면의 더러움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한 며칠은 순화되어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어제 6월16일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추모일이었다.

 

빠른 산행길의 숨 고르기,

빠른 인생살이의 숨 고르기,

내가 걸어 온 길을 뒤돌아보며

잠시 속도를 조정해 본다.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을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치던

그 남자의 말처럼

내 안의 불순함을 뱉어내며

 

오늘 하루 아름다운 그 사람의 영혼을 추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