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에 묻히다
봄이 지는 계절
한닙
2012. 4. 22. 23:05
큰댁 머슴에, 고향이 퍽 멀다는, 이대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대롱은 떠꺼머리총각으로, 퉁소를 잘 불었다.
더구나 억새밭인 동산에 달이 밝은 밤이면,
이대롱은 어린 과부가 나이 많은 딸을 찾아 금강산으로 간다는 곡조를
청승맞도록 구슬프게 불었다.
미나리꽝 옆에 사는 무당네 딸 득이는,
어느 해 봄, 배꽃이 눈보라처럼 지던 날,
이대롱을 따라 먼 마을로 살림을 떠났다.
지붕에 박이 여물고 동산에 달이 밝은 밤이나,
배꽃이 지고 찔레가 피는 철이 되면,
소년은 불현듯 이대롱과 득이를 생각하고,
왠지 또 뭔지도 모를 아쉬움과 애상(哀想)에 잠기곤 했다.
요람기 中에서 ... 오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