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한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한닙 2008. 6. 1. 11:45


아카시아 꽃이 지고 밤꽃이 피면, 보리가 누렇게 익고, 무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보리를 거둬들이고 모내기도 끝나면, 산도, 들도, 마을도 온통 푸르름으로 싸여 버렸다. 이 푸르름 속에서 뻐꾸기는 온종일 지겹도록 울어 대고, 마을 앞 느티나무 그늘에서는 노인들이 장기판도 벌였다.

해가 서쪽으로 한 발쯤만 기울면 아이들은 소를 앞세우고 밤밭골로 모여들었다. 마을 아이들은 소를 좋아했고, 소 뜯기기를 좋아했다.

소년은 소가 없었다. 소 한 마리 먹이기가 소년은 늘 소원이었다. 소는 어질고 순해서 어린아이들에게도 순순히 따르고 말도 잘 들었다. 고삐를 걷어 뿔에 감고 놓아두면, 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멋대로 풀을 뜯어먹었다. 실컷 풀을 먹고 난 소들은 나무 밑이나 잔디밭에 배를 깔고 졸면서 천천히 새김질을 하거나, 젖먹이를 달고 온 어미소면 혓바닥으로 새끼 몸뚱이를 핥아 주기도 했다.

젖먹이 새끼소는 참 귀여웠다. 새끼 때 귀엽지 않은 짐승이 있을까마는, 갓난 송아지만큼 귀여운 짐승도 없을 것 같았다. 젖먹이 송아지를 안고 얼굴에 비비대 보면, 털이 비단결보다도 더 보드랍고 매끈했다. 속눈썹의 그늘이 진 둥글고 큰 눈망울은 한 오리의 불평도 의심도 없이 언제나 맑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송아지는 개나 고양이 새끼와는 달리, 안기만 하면 뛰쳐나가려고 잘 바동거렸다, 바동거려도 놓아주지 않으면 ?메에? 하고 울기도 했다. 송아지가 ?메에?하고 울면, 어미 소가 ?무우?하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기도 했다. 이럴 때 제 새끼를 놓아주지 않으면, 어미 소는 ?푸우푸우?하고 숨결이 거칠어지고 때로는 받기도 했다.

멧새 집을 찾아 뒤지고 꿩 새끼를 쫓고 하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아이들은 제각기 소를 찾아 앞세우고 마을로 내려왔다.

                                                                                                                                         

                                                                                                             요람기 .. 오영수







농경사회가 생활에 중심이었던 우리 민족,

그래서 소와 함께 살아 온 삶


그 순하디 순한 소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수난을 당하나...


* 물론 쇠고기 협상만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2008년 5월 31일 서울 시청 앞,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