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에 묻히다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 글, 사진 호시노 미치오

한닙 2009. 12. 3. 19:14



자연과 하나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




1.

- 예전에 사냥길에 나섰다가 까마귀를 만나면 이런 말로 소원을 빌었어.

'할아버지 저에게 사냥감을 내려주세요'

만약 까마귀가 그 소원에 대답을 해주면 성공적인 사냥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았지.

까마귀는 이 세상의 창조주라고 했어.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진 생물이었지.


나는 캐서린의 이야기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녀는 종종 터부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있었고,

그 터부를 지키는 것은 자연과 일상생활 속에서 제 운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빠르게 침투하고 있지만,

캐서린이나 스티븐은 사라지려고 하는 또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2.

마을 사람들의 원은 어느새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오늘은 포클래치, 1년 전 세상을 떠난 노파의 영혼을 떠나보내는 잔치다.

흑곰, 비버, 연어, 그리고 블루베리, 크랜베리 같은 나무 열매들,

진수성찬으로 영혼을 달래서 떠나보낸다.

나는 마을의 가족들과 무스 사냥에서 막 돌아온 참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면서 죽은 사람을 이야기 했다.

오두막 안은 열기로 가득 차고 죽은자에 대한 슬픔은 묘한 명랑한 분위기로 승화되어 간다.

산 자와 죽은 자, 유기물과 무기물의 경계는 과연 어디일까.

눈 앞의 수프를 떠 먹으면, 극북에 숲 속에 살던 무스의 몸뚱이는 천천히 내 몸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무스가 되고 무스는 사람이 된다.

오두막 주위에 숨쉬는 자연, 저기 바로 숲이 있다.

저 숲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강은 또 어떤가.

우리가 무스를 찾아 여행하던 강물은 지금도 어둠 속을 흐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

점차 흥분의 도가니로 화하는 윤무를 지켜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품고 있는 들판이라는 세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열매가 익는 계절



 

사진 : 가을에 나무 열매를 따는 에스키모 노파     




 

3.

'여름이 가고 첫서리와 키스를 하면 블루베리가 달콤해진다.'

9월로 들어서자 알래스카 들판은 온갖 열매로 뒤덮인다.

크랜베리, 블루베리, 서몬베리, 크로우베리......

쌀쌀한 날이 계속 되며 블루베리는 아닌 게 아니라 깜짝 놀랄 만큼 달콤해진다.



  







 

 *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 알래스카의 차가운 바람 이야기를 만난 것은 한 편의 경이로움이었다.


사실..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한 충동구매였다.
온라인 서점에 제법 두둑한 마일리지가 남아 있어,
아무 생각없이 눈길 끌리는 대로 산 책이었는데,
알래스카의 차가운 바람 이야기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베링해를 지나 이어지는 동토의 땅 알래스카...
이 땅은 일찌기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육로로, 
물이 빠진 베링해의 평야를 건너 몽골로이드는 알래스카로 건너왔다고 한다.
위스콘신빙하기(기원전 1만 8년 전)의 이야기다.

20년 가까이를 문명에서 벗어나 에스키모인들과 하나가 되어 살았다는 사진작가 미치오가 들려주는 강하지만 연약하고, 아름답지만 잔혹한, 그리고 작은 것에서 쉽게 상처를 받는 자연의 이야기는 나를 너무나 깊게 단숨에 매료시켜 버렸다.    

마지막까지 자연 속에 사진 작업을 하다가 죽어간 미치오가 남겨준 아름답고 생생한 화보를 감상하는 시간은 숨막히는 경이로움이었다.






앞으로 ... 인수에서 바위를 하다가 까마귀 소리를 듣게 된다면,

-  할아버지, 저에게 행운을 내려주세요 - 

라고 나도 역시 소원을 빌게 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