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에 묻히다

우리시대의 난장이들

한닙 2006. 2. 25. 15:04



살아가면서 가끔씩 노래를 듣는다.

줄 끊어진 기타를 치며 부르는 영희의 노래,

영희가 최후의 시장에서 사 온,

줄 끊어진 기타를 들고

언제까지 노래를 부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의 본문 중에서-



난장이는 지섭이 건네준 <일만년후의 세계>를 본 뒤, 달나라로 떠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의 작가 조세희 선생님은

나에게 무언가 특혜를 줘야 할 지 모른다.

나는 이 책을 무려 여섯 번이나 샀다.

이 책을 빌려간 사람들은

도대체 책을 돌려주지 않는다.


피뢰침을 잡고 종이 비행기를 날리던

난장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혹은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영희의 줄 끊어진 기타소리가

듣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조세희 선생님의 약간 건조한

그 문장들이 읽고 싶어질 때마다

나는 다시 책을 사야 했다.



신애는 저 자신과 남편을 난장이에 비유하고는 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난장이야, 난장이...

아버지는 전 생애를 통해서 그의 시대.사회와 불화했던 사람이다.

신애는 남편이 같은 혈통의 사람임을 잘 알았다.

좋은 책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던 남편은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실어증 환자로 생각했다.

증오하는 돈도 죽어라하고 벌었으나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 책 본문 중에서-





나는 신애나 신애의 남편과
비슷한 우리 시대의 난장이들을 자주 만난다.

어쩌면 나와 내 남편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난장이 가족인지 모른다.

 


오늘도

영희는 온종일 팬지꽃 앞에 앉아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줄 끊어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시대는 힘든 시대이고, 그 시대를 문장으로 축소할 만큼 충분히 이해해야 글은 쓰여지는 것이다."

작가 조세희 선생님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