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에 묻히다
지붕 위의 사람들 / 황인숙 동화, 이제하 그림
한닙
2008. 10. 22. 20:04
1.
그 날은 비들의 축제일이었다.
모든 근심과 우울을 씻어버리라고, 이렇게 씻어버리라고
비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몸을 비틀며 와글와글 쏟아져내렸다.
활씬 벗은 빗줄기가 춤을 추며 쏟아져 내려
콸콸콸 호쾌한 소리를 내며 길 위를 달려갔다.
청배는 멈춰서서 빗물이 샌들 속의 발가락 사이를 훑으며 흘러가는 걸 내려다 보았다.
- 지붕 위의 사람들 본문 중에서
2.
며칠 동안 복잡한 일이 있어..
머리를 식히려고 집어들었던 책인데,
-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니 스트레스가 풀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을비가 쫄쫄 내리는 오후,
흠~ ~
맛스럽고 고소하기까지 했다.
창경원을 배경으로 했던 김승옥의 雨요일과도 비슷한 느낌이었고,
어린 시절 읽던 마해송 동화의 한 장면을 다시 읽는 기분도 들었다.
올드해지다가,
한껏 우울해지기도 하고,
통통 튀기는 빗소리를 따라 현실의 실타래가 쪼르륵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3.
비를 좋아해 비를 맞으며 찰박찰박 걷기를 좋아하는 청배와
무위도식하며 시를 쓴다는 무가 생활지의 달인 홍배의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베토벤의 주인공과 같은 세인트버나드 종의 <베토벤>과
지하철 역에서 구걸하며 생활하는 회현동 아저씨와 맞은 편 건물 옥탑방의 귀뚜라미 아가씨까지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푸릇거리는 삶이
창 밖의 차가운 가을비를 바라보는 나를 훈훈해지게 만들어 주었다.
4.
차르르르 빗소리가 지붕을 울렸다.
청배는 귀가 뾰족해지고 코가 벌름벌름해졌다.
물씬 비냄새가 났다.
청배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희뿌윰한 천장을 바라보면서 청배는 숨을 죽이고 빗소리를 음미했다.
차르르르륵.
비는 청배가 누워 있는 옥탑방의 근육과 뼈 마디마디를 리드미컬하게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