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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에 묻히다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 전경린

 





 

저에게 신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것은 아녀자가 배울 일이 아니라오.

신 만드는 일에 저 자신을 묶어 한세상을 보내고자 합니다.

왜 세상을 잊으려 하시오?

나는 나를 모르며 세상을 모르며 단지 미망 속에 살고 미망 속에 죽을 뿐입니다.

흐르는 삶은 영원하고 그대는 아침이슬과도 같고 먼지와도 같고 물거품 과도 같은 것이오.
사는 일을 알려거든 우선 그대 자신을 잊으시오.

어미도 모르고 아비도 모르며 이름도 나이도 모릅니다.
나를 안 뒤에야 잊을 수 잊고, 나를 가진 뒤에야 버릴 수 있는 바,
나를 본 적 없는데 어찌 잊으라 하십니까. 차라리 신 짓는 일에 나를 묻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는 어디에서 왔소?

알지 못합니다.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물결에 실린 뒤집힌 배처럼 왔습니다.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 본문 중에서 


   

어둠이 내려 불꺼진 아파트 단지 한 모퉁이로,
플라타너스 가지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여행가방을 들고 염소를 몰며 떠났던 여자는
달의 숨소리를 들으며
숲의 기운을 받으며
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건너서
하얀 늑대가죽을 벗어던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여자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곳으로 
영혼의 비밀을 찾으러
새벽같이 다시 떠난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깊은 곳을 더듬는 시간은 
황홀한 아픔이다.

전경린의 소설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읽는 동안
나 역시 <내 안에 새벽을 뛰어넘는 나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붉은 단풍잎이 떨어지는 가을 숲과 교감하고 싶은 계절이 왔나 보다.






* 여자의 혼은 생래적으로 야성이며 반란이고 몽환이고 유랑이다. <배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