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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8월의 마지막 오후는


# 1.
 
벌써 이십 여일 전이다.
시네큐브에서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메일을 통해 이별을 확인하는 순간 짠~ 해졌다.



# 2.

내가 사랑하는,
나의 영원한 정신적 에네르기 J를 만났다.

- J야, 시네큐브 운영이 넘어간단다.

그리고
J와 나는
25년이 넘도록, 지겹게, 닳아버리도록, 드나들고 있는 광화문 통을 간다.

그렇게
J를 떠나보내고도
아쉬워
8월 마지막 오후를 연 이틀이나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보냈다.

하루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소화하지 못하는 나는
디스 이즈 잉글랜드 세라핀을 이틀에 나누어 보았다.

광화문의 시네큐브가 좋았던 것은
조나단 포르보스키의 '망치질 하는 사람' 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이 운영하는 영화관의 색깔이 좋았기 때문이다.


# 3.

평일이면 서너 명, 주말에도 영화관이 꽉찬 적은 별루 없었는데
아듀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매진인 프로그램도 있었다.

Good Bye Cube의 이벤트로 시네큐브 소장본이던 희귀 비디오를 두 개나 챙겼다.
아트하우스 모모의 초대권도 두 장이나 챙겼다.
(영화 1편당 1개씩 받았으니..)

몇몇 사람들은 시네큐브가 소장했던 필름을 자르고 있었다.
아예 두루마리로 말아가시는 분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그렇듯이 엔딩곡을 듣는 즐거움도 충분히 만끽했다.

그런데..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시청으로
소공동으로
명동으로
걸어내려오며 무언가 많이 허전했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 4.

<명보에서>


명동에서 아드님이 주문한 볼일을 보고,
종로를 갈까 하다
오랫만에
(옛)산재병원, 지금의 평화방송 건물을 끼고 충무로를 들어선다.


아마데우스 개봉일에 줄서서 기다리던 추억의 명보.
<명보>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사연이 있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도 옛모습이 남아있던 스카라 극장은 지금 공.사.중.





패스트푸드의 <제1세대>이기도 한 나는
스카라 극장 옆 롯데리아 이층 창가에 앉아서(명보극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던 곳) 주로 영화를 기다린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충무로의 가을 야경이 얼마나 또 근사한 가는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추억인데..

재작년 가을 지나가다 슬쩍 바라보니
롯데리아는 낡은 간판만 남아있고
내부수리 중이더니

놀부 부대찌개로 바뀌어 버렸다.

우습게도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박박 지워버린 <너>의 전화번호처럼
우리가 공유했던 아름다운 추억도 그렇게 지워진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 5.

<충무로 거리>


충무로 거리는 한창 영화축제지만,
시네큐브의 이별 이벤트로 관객이 가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썰렁한 느낌;;
  
프로그램을 보니
심야에는 대부 1,2,3 편을 연타로 상영하고,
70년대의 청춘아이콘 신성일 주연의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길소뜸 이라든가,
영원한 에로스타 마릴린 먼로의 주옥같은 작품 소개에,
좀더 부지런했으면 좋았을 걸 싶은 마음이었다.
  





 
# 6.

<대한극장까지>


멧살라의 느글거리는 웃음과 경쾌한 콰이강의 마치가 눈 감아도 떠오르는 곳. 

대한극장이 단관극장에서
멀티플래스 극장으로 바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대한극장>만은 안돼! 하던 허망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웅,
하루 종일  
너무 많이 걸었다.

그러고 보니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광화문 시네큐브를 나와서 
<챔프>를 보며 눈물을 질질 흘리던 옛 코리아나를 거쳐 
여름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비비안 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던 중앙극장을 지나  
영원한 스타 모찰트의 <아마데우스> 명보를 찍고
<벤허><콰이강의 다리>까지

청춘을 함께 했던 영화관 순례를 하게 된 하루였다. 

그리고,
피로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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