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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맑은 물 속에 물고기가 살고 있었던 게,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게
더 이상 싫증난 물고기는
이 곳에서 살려고 마음 먹었다.
물은 가끔 성내기도 했고,
부글부글거리기도 했고,
차갑고
쌀쌀맞기도 했다.
그 때마다
물고기는 비늘이 떨어져 나갈 만큼 아팠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온 몸이 옥죄오기도 했고,
그래서 파닥거리기도 했다.
어느 날,
물은 물고기의 속삭임을 들었다.
네가
성내거나 괴로워할 때마다
난
너무 힘들어져.
이제,
물고기는
물이
자주 변덕을 부린다는 걸 알아채기 시작했다.
다시 흘러 흘러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물고기는 변덕 많은 물에게 정이 들어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고기는
물을 사랑하고 있었다.
#
비가 오고
날이 개이면서
물은 말라갔다.
물고기도 말라갔다.
네가 나를 미워하기도 했던 걸 알고 있어.
내가 못된 짓을 가끔 했던 건 정말 미안해.
이제 너는 가야 해, 멀리 떠나.
나는 병이 들었어. 자꾸 오염되고 있어.
처음으로 물이 속삭였다.
물고기는 파닥거리며 도리질을 했다.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물은 조금씩 흐려져 갔다.
물은 조금씩 말라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물고기는 몸이 말랑거리는 연체 상태로 변해,
뽀얀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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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난 그래도 물고기가 될거야,
너를 사랑해, 그래서 행복했어.
이제는 흐물거리고 말랑말랑해져 버린 연체 상태의 물고기가
뿌옇고 탁해져 말라가는 물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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