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정공채 시인이 세상을 이별했다는 부음을
나는 여름이 다 되어,
친구 J를 만나 들었다.
전혜린 여사와 동갑내기생 정공채 시인..
스무살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정공채 시인을 얘기했었는데,
그 시절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이제 그는 저기 다른 세상에서
명동시절의 그리운 벗들을 만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며,
80년대의 마지막까지 명동의 한자락을 풍미해주었던
음악다방 르네상스에서 보내던 어두운 시간이 스쳐 지난다.
검은 눈동자의 지성녀(知性女)
-정공채-
우리들의 슬프도록 아름답고 안타까운 전혜린의 평전을 쓰면서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울어야만 했다.
그녀가 인생을 생각하는 인생관이나 예술을 생각하는 예술관이 너무나 통찰력 깊은 진실에의 앓음이요, 그 울음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더불어 함께 울어야 하고 함께 앓아야 하는 절대 공감의 마당에 놓여지는 영원한 동시대의 질감이어서 거듭 더했던 것이다.
전혜린! 가득한 우수를 담고서도 지성으로 빛나기만 했던 그 검은 눈동자의 여인. 그녀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선천적인 감성의 밭을 지성의 쟁기고 일군 멋과 알므다움, 짙은 멜랑코리와 관조, 자아와 시공세계로 번민하면서도 긍정의 눈으로 끝없이 추구해 나간 번득이는 생의 파노라마....
일찍이 그녀가 서울 법대에 재학중이었을 때 그녀의 은사였으며 당신의 법대학장이던 신태환 교수가 [한국에서는 1세기에 한번쯤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격찬을 마지 않았던 전혜린.
그녀는 또한 한국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독일 유학생이 되어 뮌헨 대학에서 만 4년간. 횟수로는 5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그녀의 모교인 경기여고와 서울 법대(그녀가 처음으로 학교의 완고한 전통을 깨고 그 강단에 섰던 것이다),아울러 성균관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와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었다.
이같이 바쁜 교수생활 가운데서도 끊임없는 예술 창조에의 길을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매혹적으로 파고들었던 그녀. 그러나 그토록 기대받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한창 왕성하게 일해야 할 31세라는 부푼 꽃의 나이에 수수께끼 같은 죽음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녀의 이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죽음은 이땅의 모든 지성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아울러 깊은 애도 속에 연민하면서도 저마다의 상상으로 그녀를 화제의 중심인물로 삼기도 했었다.
이제 그녀가 우리와 작별하고 저 하늘로 저문 지도 어언 18년------
나는 여기서 지난해와 올해의 상반기를 그녀의 사념과 생 가운데 뛰어들어 함께 앓고 동감해 오면서 드디어 그녀의 평전을 완성해 놓는다.
이것은 그녀에 대해 내가 매료당한 것이라 해도 틀림이 없고, 더 나아가 그녀의 온갖 감정과 지성이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빛나고 있는 가치 큰 삶이요, 예술이었기에 일원화된 체계로 그녀의 평전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으 쓰면서 새벽마다, 밤마다 몇 차례고 꿇어 않고 고쳐 앉고 하였다. 그녀의 유작집이 된 일기와 단장(斷章),수필과 시, 평문과 철학,인생관과 예술관, 꿈과 삶, 그밖의 많은 편지들을 하나하나 깊이 섭렵하면서 나는 가슴속으로 깊이 앓으면서 글을 매만져야 했고 지극히 조심스러워야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충실하면서 조금의 가감(加減)도 없이 가장 올바른 평전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일은 마치 나의 시반(詩伴),고은 시인이 [이중섭 평전]을 쓰면서 머리말에서 밝힌 바 있는 [이제 와서 나는 해복하다. 그를 만난 일이 없다는 사실.(중략) 그것은 반 고호 사후, 화란의 브라만 지방 누엔 마을의 적요(寂寥)를 찾아나섬으로써 한 위대한 예술가의 궤적을 찾았던<고호전>의 작가 귀스타브 고끼오와 같을 수 있고, 전기의 왕자 롤랑이나 츠바이크의 평전문화와 커다란 휴머니즘을 닮는 낙관으 앞세운다] 라는 심정과 조금도 진배 없기에 거듭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이 돼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같은 1년 6개월 남짓한 세월 동안의 인간앓이 끝에 이 책을 완성하면서 뿌듯한 기쁨을 되레 슬픔의 조화(弔花)다발로 선산의 그녀 무덤 앞에 이책과 함께 놓여질 것이다.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 가운데
시와 철학이 진실로 빛나는 천상의 세계
하늘나라에서
전혜린!
이 땅에서 살다간 지성녀 그대
더욱 아름답고 빛나게
편이 지내거라
빗소리 들리는 수유리 다락방에서
전혜린 여사와 동갑내기 같은 겨울생
정공채삼가 씀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어가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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