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 을 출판하고,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제 3번>을 초연했고,
클림트는 영원한 에로티시즘을 꿈꾼다.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그리고 21세기 ... 드디어 클림트는 피카소를 넘어 섰다.
2004년 소더비 경매에서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은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클림트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을 외친다. 클림트는 한 시대의 반란을 꿈꾼 '비엔나 분리파' 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전주의,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감추어진 진실을 찾으려 했다.
그의 예술은 건축, 가구, 공예, 도시계획 등 삶의 총체적으로 다가간다. 클림트는 젊은 화가들과 함께 분리파를 결성하며 본능적 삶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 동안 은폐되었던 性을 벌거벗김으로 벌거벗은 진실 속에 20세기의 인간을 발견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누다 베리타스' - 벌거벗은 진실 ... 분리파가 고안한 상징 가운데 예술의 거울을 현대인에게 갖다 대어 봄으로 감추어진 인간의 심리적인 욕망을 찾았을 것이다.
가장 여성적인 것이, 가장 관능적인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타원형의 꽃무늬 ... 자궁과도 같은 세계 속에 사랑과 죽음의 맹옥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게 된다.
클림트는 자신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 자화상도 그리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을 뿐이다.
' 나는 말하고 쓰는 일에 재주가 없다. 특히 나 자신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극히 간단한 편지를 써야 할 경우에도 마치 뱃멀미를 걱정하는 사람처럼 공포에 사로 잡히곤 한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혹은 문학적인 자화상은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일은 조금도 유감스럽지 않다. 나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 물론 화가로서의 나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것뿐이므로 - 내 작품을 보고 찾아내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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