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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속 세상

나무를 만나다.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왔을 법한,
나의 시름도 넉넉히 품어줄 수 있을 듯한,
한 그루 나무를 만나다.


 




<김남희의 남미걷기 중에서>

철이 든 이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는 나무였다. 품 넓은 나무 한 그루만 있다면 어디서든 나는 족했다. 팍팍한 일상에 지쳐 주저앉고 싶어지는 날에는 그 나무에 기대어 물기 없이 쪼그라든 내 마음을 적셨고, 혼자라는 게 새삼 몸서리쳐지는 겨울밤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견디는 힘에 대해 생각했고, 뜨거웠던 마음이 식어가는 일에 베인 날이라면 그 나무의 옹이를 어루만지며 제 품에 깃드는 이들을 가리지 않고 품어주는 넉넉함에 대해 가늠하고는 했다.

깊은 콘크리트 빌딩 숲에 갇혀 사는 날이라 해도 근처에 오래 늙어 싱싱한 나무 한 그루만 있다면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많이도 기대어 눈물을 쏟았던 나무가 어느 골목에건 한 그루쯤은 있었다. 나무는 지상에서 품고 있는 내 비밀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에 나무와 몸을 바꿔 이 세상에 다시 오고픈 건 내 오랜 꿈이기도 했다. 나무를 바라볼 때면 되묻고는 했다. 사람도 결국 그가 품을 수 있는 타인의 존재만큼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내게 오는 이들을 다 안아줄 수 있을까. 휘어지면 휘어지는 대로, 부러지면 또 부러지는 대로,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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