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 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같고
먼저 떨어져 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같고
도봉산으로 하산하려면 꼭 김수영 시비 앞에 앉아
커피 한 잔하며 숨고르기를 해 본다.
김수영 그 앞에 내가 앉으면
가래가 뱉어지고,
불순물이 뱉어지고,
내 내면의 더러움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한 며칠은 순화되어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어제 6월16일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추모일이었다.
빠른 산행길의 숨 고르기,
빠른 인생살이의 숨 고르기,
내가 걸어 온 길을 뒤돌아보며
잠시 속도를 조정해 본다.
또 앞으로 걸어갈 길을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치던
그 남자의 말처럼
내 안의 불순함을 뱉어내며
오늘 하루 아름다운 그 사람의 영혼을 추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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