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冊에 묻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희미한 남풍이 실어 온 바다 내음과 불타는듯한

아스팔트 냄새가 나로 하여금 오래 전의 여름을 연상하게 해주었다.

여자의 피부의 온기, 오래된 로큰롤,

갓 세탁한 버튼다운 셔츠,

풀의 탈의실에서 피운 담배 냄새, 희미한 예감...


모두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달콤한 여름날의 꿈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여름(언제였던가?)

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미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어울릴 만큼의 미인은 아니었다 "


그녀는 피서지 같아 보이는 어떤 바닷가의 방조제에 앉아서 어색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다.

머리는 진 세버그처럼 짧게 깎았고( 그 헤어스타일은 나에게 나치스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시켰다.)

빨간 깅엄( 줄무늬 혹은 체크 무늬의 평직 면) 으로 만든 긴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마음 속 가장 섬세한 부분까지 꿰뚫어 버릴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2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왜 그녀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 자신은 알고 있었는지조차도 미심쩍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끔찍한 꿈을 꾸었다.

커다란 검은 새가 되어 서쪽을 향해 정글 위를 날고 있었다.

나는 깊은 상처를 입어 날개에는 핏자국이 검게 엉겨 붙어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불길한 검은 구름이 하늘 가득 퍼지기 시작했고 주위에서는 어렴풋이 비 냄새가 났다.


오래간만에 꾸는 꿈이었다.

너무나 오래간만이라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