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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age

한국의 택시기사와 얘기하지 않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며칠 전, 한 택시기사로부터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거칠었고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는 내가 한국의 택시기사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봤다면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택시기사와는 말도 나누지 않겠다고 했느냐”며 나를 준열히 꾸짖었다. 황당했고 당황했던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그가 알려준 <데일리 서프라이즈>를 찾아 검색해보았다.

과연 “홍세화 ‘나는 더 이상 한국 택시운전사와 얘기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제목 앞에는 ‘데일리 서프 특종’이라는 말까지 붙어 있었다. 나로선 그저 ‘허허’ 하고 웃을 수밖에. ‘더 이상 한국 택시운전사와 얘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특종이 될 수 있다니, 나는 실로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한국 택시운전사와 얘기를 나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얘기를.

“프랑스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택시노동 조건이 유럽에서 열악한 편에 속하지만, 한국의 택시노동 조건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말도 마십쇼. …이 짓은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닙니다.”

잠시 동안 우리는 죽이 맞아 서로의 경험을 나눈다. 한국의 택시기사들이 불친절하다지만 택시기사들만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돈 없는 사람들에겐 모든 사람이 불친절하다, 유럽의 택시기사들이 손님들에게 친절하다면 그것은 그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 등은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어도, 좁은 택시공간은 자못 화기애애하다. 대개 그쯤에서 얘기를 마감하게 되지만, 먼 거리를 갈 때나 길이 밀릴 때는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바뀐다. 택시기사가 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래, 한국에 돌아와선 무슨 일을 하쇼?”
“저요, 지금 한겨레신문에 다닙니다.”
“아, 그래요. 한겨레신문사 운송부에 다니시는가 보지요. 역시 월급쟁이가 훨씬 낫지요.”

나는 가타부타 대답하는 대신 거꾸로 묻는다.

“기사분은 한겨레신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택시 기사로부터 항의를 받다' 中 에서 ..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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